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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출판사와 편집자가 당부 드리는 글

내인생의책 2024. 12. 17. 21:56

작가에게 출판사와 편집자가 당부 드리는 글

 

1. 독자는 돈을 내고 시간을 내서 정신을 집중해서 책을 읽습니다. 다른 상품은 돈을 내고 시간을 내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이용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그 값에 대한 상응적 조치를 해줘야 합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감동이나 새로운 정보를 줘야 합니다. 만 원짜리 책을 읽었을 때는 만 원 이상의 가치(감동 혹은 정보)를 줘야 우리는 사기꾼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사기꾼이 되는 것입니다.

 

2. 책은 일반 상품과는 다릅니다. 다른 상품은 배를 채우거나 혹은 돈을 벌게 해준다든가 하는 이용자의 기본적 1차적 욕구를 해결합니다. 그렇지만 책은 다 읽기 싫어하고 자기 인생이 헛헛할 때 읽습니다. 그런 분들한테 돈을 받고 시간을 내라고 하고 정신을 집중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책을 팔기가 쉽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책을 읽어주는 분들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고 그런 노동을 강요하니 우리가 얼마나 나쁜 놈입니까?

 

3. 책의 판권에는 작가의 성함과 편집자의 이름, 영업자의 이름, 출판사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은 편집자, 영업자, 출판사의 저작물이 아닌 작가 고유의 저작물입니다. 작가가 현명해서도 아니고, 노동을 많이 투여해서도 아닙니다. 그 책을 생산하는데 가장 많이 기여하는 게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저작물입니다.

 

4. 원판 불변의 법칙이 있습니다. 원판을 결정짓는 건 작가입니다. 편집자가 아닙니다. 편집자는 그 원판에 완벽한 성형을 할 수 없습니다. 원판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가 없습니다. 편집자가 할 수 있는 건 화장입니다. 10% 미만을 고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편집자는 원판이 좋은 작가를 오늘도 찾고 있습니다. 기획이라는 게 그런 작가를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5. 제1독자인 편집자가 혹은 출판사 영업자가 좋아하지 않는 책은 팔리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객관적으로 읽어봤을 때 야! 괜찮은데, 이 책 내가 편집했지만, 내가 마케팅을 하지만, 이 책 괜찮아, 내가 못 팔아서 죄송하네 하는 느낌이 절로 들어야 합니다. 이 감정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괜찮다는 느낌이 들면 아무도 없는 자신의 방 안에서 이불킥을 합니다. 그때의 짜릿함은 아는 사람만 압니다. 이때는 돈이 문제가 안 됩니다.

 

6. 이렇게 어렵게 책을 내지만 책은 작가의 삶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간혹 백만 분의 일의 경우는 바뀝니다. 하지만 대개는 작가의 기대와는 달리 작가의 삶에 별 영향이 없는 게 차가운 현실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들인 정성과 역량에 비해 열매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거 압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은 원고를 넘겼다고, 책이 나왔다고 난 몰라하고 뒷짐을 지는 것보다는 그 책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출판사도 그 책을 팔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합니다. 이건 보증합니다.